2011/03/09 18:17

겨울회 백미 '돌가자미', 달콤한 악마가 내안으로 들어왔다




겨울 맛의 호사, 일명 이시가리. 돌가자미 회 한 점이 입 속에서 그냥 사라졌다. 녹아버렸다, 라는 것은 이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 뼈째 썰기, 시중 말로 세꼬시 한 점을 입 속에 넣으니 폭발했다. 가느다란, 있는 듯 없는 듯한 뼈가 이 사이에서 아삭하고 씹혔으나 이내 흔적이 없어져 버렸다. 마치 회의 형체가 고소한 맛 속으로 일시에 산산조각 나 없어지는 느낌이었다.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류의 '달콤한 악마가 내 안으로 들어왔다' 식의 표현을 빌리자면 세꼬시가 혀 위에서 미끄러져 목구멍 속으로 증발했다. 안타까웠으나 황홀했다. 사라졌는데 머릿속과 몸 속에서 붉은 꽃이 피어나는 듯했다. "아니 이런 맛이…." 말은 거기서 멈추고, 더 이상의 표현은 끊어졌다. 관능 그 자체였다.

같은 테이블에 앉은 한 사람은 "이제 더 이상 다른 회는 먹지 못할 것 같다"며 엄살을 떨었다. 다른 이는 "입을 버렸다"고도 걱정했다. 엄살과 걱정은 미식(美食)에 대한 찬미였다. 미식이 말 그대로 아름다웠다. 이것이 겨울의 찬바람, 찬물, 찬 기운이 낳은 정수의 맛이었다.

# 삶과 죽음의 경계

롯데호텔 부산의 일식집 모모야마의 주방. 접시 위에 돌가자미가 꿈틀거렸다. 힘찼다. 뻐끔거리는 돌가자미의 입에서 바다 냄새가 훅 하고 끼쳐왔다. 돌가자미의 등짝이 바닷가의 바위처럼 굳세게 보였다. 백선일 모모야마 조리장이 꿈틀거리는 돌가자미를 지그시 눌렀다. 돌가자미의 눈은 마주보니 오른쪽에 몰려 있다. 돌가자미의 눈은 치어 때는 양쪽에 있으나, 성장하면서 한쪽으로 몰린다고 하는데 성장하는 것이 한쪽으로 치우치는 편견을 쌓는 것인지 그 이유는 알 수 없었다.

롯데호텔 주방 20년 경력의 백 조리장은 익숙한 솜씨로 돌가자미를 잡았다. 내장을 꺼내고 간을 꺼냈다. 모두가 일등 요리의 재료다. 회를 뜨기 위해 날개 지느러미를 가위로 오려낸다. 백 조리장은 "광어는 껍질을 칼로 벗겨내지만 돌가자미는 껍질을 손으로 벗긴다"며 힘들게 돌가자미의 껍질을 벗겼다. 하얀 속살, 눈부신 돌가자미의 속살이 가감없이 드러났다. 하얀 살 속에 불그름한 빛과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우리가 아는 돌가자미 회의 빛깔이었다.

# 세 가지 회 뜨는 방법

돌가자미를 회로 뜨는 방법은 세 가지다.

첫째는 뼈째 썰기(세꼬시). 칼이 달라졌다. 짤막하고 넓은 칼에서 길고 좁은 칼(사시미칼)로 바뀌었다. 사시미칼은 살에 대한 거부감이 전혀 없었다. 단호했다. 누워있는 돌가자미 몸뚱어리의 가장자리, 그러니까 지느러미 부분부터 등뼈 부분까지 차근차근 얇게 잠식해 들어갔다. 사각사각, 싸각싸각, 뼈째로 썰어지는 그 소리가 명쾌했다. 새싹이 돋는 소리 같았다. 불그스름한 세꼬시 회가 칼날의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쌓여갔다. 저것이다. 저 빛깔이다. 흰 빛깔의 몸통이 품었던 불그스름한 빛깔이 여지없이 드러났다. 그것이 '이시가리 세꼬시'의 빛깔이었다.

둘째는 포 뜨기인데 다시 포 뜬 것은 두 가지 회로 만들 수 있다. 포를 뜬 것을 썬 일반적인 회와, 복사사미처럼 접시 바닥이 보이게끔 아주 얇게 썬 회. 백 조리장은 익숙하게 포를 떴다. 일명 '5장 뜨기'의 방법이었다. 포를 뜰 때 또 칼이 달라졌다. 넓은 칼이 등줄기를 따라 칼집을 넣고 그 틈새를 벌려 포를 만들어냈다. 백 조리장의 칼 다루는 솜씨가 절묘했다. 등짝의 포 두 장은 검은색을, 배쪽의 포 두 장은 흰색을 띠고 있었다. 이 네 장은 회로 먹는 것이고, 나머지 한 장은 등뼈 부분인데 매운탕이나 맑은국으로 먹는다. 백 조리장은 "돌가자미 회가 맛있다면 국은 더 시원하다"고 했다.

# 양념이 맛을 좌우할 수 있더라

실상 돌가자미는 양념을 거부한다고 할 수 있다. 미식의 야만과 절정은 먹는 것 그대로, 날것의 맛에 있다. 우리는 미식가는 아니어서 양념에 대한 백 조리장의 설명을 들으니 그것이 또한 요리의 가파른 절정이다. 한국 사람들은 초고추장과 막장을 잘 찾는다고 한다.

그러나 또 다른 양념이 있다. 돌가자미에서 아주 특징적인 양념이 첫째 '기무조유'였다. 돌가자미의 간을 사시미간장에 녹인 것인데, 혹여 일식집에서 볼 수 있는 해삼 내장 양념과는 차원이 달랐다. 기무조유는 노란 빛깔에 가까운데 그 빛깔처럼 아주 부드럽게 회를 얼싸안는 맛이었다. 포 뜨기를 한 돌가자미 회 한 점을 기무조유에 찍어 먹는다. "이야!" 사람들은 감탄했다. 이 무슨 맛인고?라는 표정이다. 없던 신개척의 맛이다. 돌가자미 간으로 돌가자미 살점 맛을 더하니 살신성인의 맛인가. 은은한 향취가 입속에서 끊어지질 않았다.

둘째는 사시미간장이었다. 이게 간단치 않았다. 그냥 간장이 아니라 간장에 미림 술 생선가루 가다랑어포물 기타 등등을 배합한 것이라고 한다. 이 집의 특별 제조 간장이다. 맛을 내려면 이 정도는 되어야 한다고 그 간장은 말하고 있었다. 거기에 생와사비와, 진해거담제 역할을 한다는 중국 원산의 바쿠다이카이를 넣고 절인 국화잎과 새싹을 곁들여 먹었다. 새싹은 봄이고 국화잎은 가을이라 도대체 계절이 없었고, 모든 계절이 들어 있는 듯 했다. 한 점의 회가 그러했다.

셋째 양념은 폰즈였다. 초간장이라 불리는 것으로 흰살 생선을 먹을 때 사용하면 제격인 양념이다.

# 입 속에서 녹더라

먹는 법이 있었다. 젓가락과 입 사이는 가깝고도 멀었다. 젓가락으로 복 사시미처럼 얇게 썬 돌가자미 회를 집어 입 속이 아니라 앞접시 위에 올린다. 그 위에 국화잎 새싹 따위를 올려 기무조유에 찍는다. 새싹에서 계절의 향취가 솟아올랐다. 백 조리장은 "2월 말 구멍이 숭숭 뚫린 기장 쇠미역에 회를 싸 먹으면 가장 맛있다"라고 했다. 세꼬시의 특징적인 불그스름한 빛깔은 뼈에 붙어 있는 선홍색의 실핏줄 때문이다. 그런데 포를 뜨면 돌가자미의 빛깔이 흰색으로 바뀐다. 복사시미처럼 얇게 떠서 먹는 것은 1~2월에만 먹을 수 있는 것이라고 한다.

지금 돌가자미를 먹을 수 있는 곳은 롯데호텔 부산 모모야마와, 부산 수영구 민락동 방파제 횟집 등지이다. 부산 사람들은 "고소하다"며 열에 여덟아홉은 '세꼬시'를 찾고 있다. 입에 녹는 돌가자미 회, 옥에 티는 비싸다는 것이다. 비싼 값 앞에서도 무모해지는 것이 미식의 한 갈래라고 했던가.

최학림기자 theos@busanilbo.com 

[출처] 한국명품농수산마케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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