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국장의 역사는 고구려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니까 1400년 정도 된다고 한다.
옛 고구려와 발해의 땅이었던 만주 지방에서 말을 몰고 다니던 우리의 선조들은 콩을 삶아 말안장 밑에 넣고 다니며 수시로 먹었다고 하는데, 말의 체온(37~40℃)에 의해 삶은 콩이 자연 발효된 것이 청국장의 원조라고 한다.
이후 이 청국장이 한반도 지역으로 내려와 서민의 유용한 단백질 공급원이자 왕가의 폐백식품으로 널리 애용되었다고 하는데, 우리 나라 문헌상의 기록으로는 김부식이 편찬한<삼국사기>에 '시'라는 이름으로 처음 등장한다. 서기 683년, 신라의 제31대 왕인 신문왕이 김흠운의 딸을 왕비로 맞을 때의 폐백 품목에 이 '시'가 있었다고 한다.
또한 신라의 제30대 왕인 문무왕이 서기 671년, 당나라의 장군 설인귀가 웅진도독부를 설치하는 것을 막기 위해 보낸 항의문에 "웅진 길이 막혀 염시(鹽시)가 바닥났다"는 내용이 있는데, 이 염시(삶은 콩에 콩 누룩을 섞어 소금물에 담갔다가 발효시켜 말린 것)가 지금의 청국장이라고 한다.
청국장에 대한 또 다른 문헌 기록으로는 조선 숙종 때의 실학자 홍만선(洪萬選)이 1715년에 쓴 일종의 농업백과사전인 <산림경제>가 있는데, 이 책에는 '전국장(戰國醬)이라는 이름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1766년 조선 영조 때 유중림이 <산림경제>를 증보하여 펴낸 <증보산림경제>에도 '전국장'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대두를 잘 씻어 삶은 후 고석(볏짚)에 싸서 따뜻한 방에 사흘간 두면 실이 난다"고 하면서 청국장 만드는 법을 상세히 기술해놓았다.
또한 고구려에서는 청국장이 '고려장(高麗醬)"으로 불렸고, 발해의 문헌에도 '책성시'라는 청국장 기록이 있다고 한다. 이러한 자료를 종합해 볼때 청국장은 우리 조상들이 삼국시대 이전부터 애용해 온 전통식품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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